청동기시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인 고인돌은 시대적으로
북방식이 앞선다는 설과 남방식이 앞선다는 설이 있으나,
시간적 관계 판단에 필요한 유물이 워낙 미미하기 때문에 확실하게 단언하기 힘들다.
고인돌이 만들어진 시점에 대해서도 아직 의견이 일치되지 않고 있다.
혹자는 방사성탄소 연대측정치를 근거로 신석기시대에 이미 고인돌이 사용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기원전 8,7세기 이전에 시작되었다거나,
아무리 이르게 보아도 기원전 5세기를 넘을 수 없다는 주장 등을 하여 이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고인돌이 마지막으로 사용된 시기에 대해서는
대체로 초기 철기시대의 대표적인 묘제인 움무덤[土壙墓]이 등장하기 이전인
기원전 2세기경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인돌이 만들어진 문화적 연원에 대해서도 역시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는데,
지하에 설치된 돌널무덤[石棺墓]이 지상화되어 고인돌로 발전하였다는 자생설,
만주지방에 분포한 대석붕(大石棚)의 영향을 받아 발생하였다는 설,
남아시아의 거석문화(巨石文化)의 유입으로 발생하였다는 설 등이 있다.
고인돌은 제주도를 포함하여 전국에 분포하나, 황해도 ·전라도에 가장 밀집되어 있으며
한 곳에 수백 기의 고인돌이 군을 이루어 분포한 경우도 있다.
북방식 고인돌은 한강 이남 지역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데,
전북 고창에서 발견된 북방식 고인돌이 최남단의 것이다.
남방식 고인돌은 전라도 지방에 밀집 분포하며,
경상도와 충청도 등 한강 이남 지역에서도 많이 보인다.
한편, 개석식(蓋石式) 고인돌은 전국적으로 분포한다.
일본 규슈[九州]지방에 분포하는 고인돌은 죠몽(繩文)시대 말기에서
야요이(邇生)시대 초기에 걸쳐 등장하는데, 그것들이 한국계 유물과 함께 발견되고 있어,
일본 야요이문화가 한국에서 건너간 사람들에 의해 형성되었음을 암시한다.
고인돌에서는 간돌검과 돌화살촉이 주요 부장품으로 발견되고 있으며,
민무늬토기와 붉은간그릇 등 토기류와 청동기가 부장된 경우도 있다.
그러나 많은 고인돌에서는 유물이 전혀 없거나 있어도 매우 미미해,
고인돌이 세골장(洗骨葬) 혹은 이차장(二次葬)용의 무덤일 가능성도 언급되고 있다.
또한 고인돌 축조에 필요한 거대한 돌의 운반에는 대규모의 인력이
필요로 하였을 것이라는 가정에서, 이것이 족장(族長) 등
지배계급들의 묘(墓)라는 주장도 있다.(출처: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상생의 손
상생의 손은 새천년을 축하하며 희망찬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다는 차원에서
99년 6월 제작에 착수한지 6개월만인 그해12월에 완공됐다.
상생의 손은 국가행사인 호미곶 해맞이 축전을 기리는 상징물이다.
육지에선 왼손, 바다에선 오른손인 상생의 손은 새천년을 맞아
모든 국민이 서로를 도우며 살자는 뜻에서 만든 조형물인
상생의 손은 두 손이 상생(상극의 반대)을 의미한다.
성화대의 화반은 해의 이미지이며, 두 개의 원형고리는 화합을 의미한다.
상생의 두손은 새천년을 맞아 화해와 상쇄의 기념정신을 담고 있다.
재질은 청동과 화강암이고, 성화대(15m*20m)와 함께
오른손(H8m*L4m*W4m)과 왼손(H3m*L6m*W4m)이 서로 마주보고 서 있는 것이 특이하다.
호미곶청포도비
내고장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 ´청포도´로 유명한 육사(陸史) 이원록(李源祿.1904~1944)의 시비(詩碑)가
포항시 남구 대보면 대보리 호미곶에 우뚝 서 있다.
경북 안동이 고향인 이육사는 호미곶과 가까운 포항시 남구 동해면 일월동
옛 포도원에서 시상(詩想)을 떠올려 청포도를 지었다고 한다.
시비는 가로 3m, 세로 1.2m, 높이 2.5m 크기로 육사를 기리는 비문과 청포도 시가 새겨져 있고.
시비 조형물 디자인은 영남대 홍성문 교수, 비문은 아동문학가 손춘익씨,
글씨는 서예가 정현식씨가 각각 맡았다.
작품감상
육사는 이 시를 통해서 풍요하고 평화로운 삶에의 소망을 노래했다.
청포도라는 소재의 신선한 감각과 선명한 색채 영상들이 잘 어울려서
작품 전체에 아름다움과 넉넉함을 준다.
특히 식민지 치하의 억압된 현실은 시인이 꿈꾸는 현실과 대립하면서,
이를 이겨내고자 하는 극복 의지가 담겨 있다.
청포도,하늘,푸른바다,청포 등 청색 이미지와 흰 돛단배,은쟁반,하이얀 모시수건 등
흰색 이미지는 이상적인 세계를 구현하는 상징적인 소재이다.
풍요로운 고향에 대한 정겨운 정서가 듬뿍 담긴 ´청포도´는 전설이 풍성하게 연결된 매체로
지금은 없지만 언젠가 고달픈 몸으로 돌아올 손님에 대한 기다림의 정서를 담고 있다.
또 ´그가 찾아올 그 날´이란 대목은 억눌린 소망이 밝은 빛 아래 펼쳐지는 때를 의미하며,
´청포입은 손님´은 어두운 역사 가운데 괴로움을 겪고 있는 이를 암시하고 있다.
´은쟁반´은 화해로운 미래 삶을 향한 순결한 소망을 암시하고 있다.
청포도(靑葡萄)
내 고장 칠월(七月)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및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을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